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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복수는 나의 것(2001, 박찬욱 감독 작품) 감상문

박찬욱 감독의 2002년 작품 <복수는 나의 것>은 개봉 후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찬욱의 최고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에세이에서는 세계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희생 당하는 개인, 아이러니의 습격에 무너지는 개인,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1. “너 착한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복수는 나의 것>의 주인공 동진’(송강호 분)는 기본적으로 선량한 인물이다. 박찬욱은 이 두 사람이 선량한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먼저 는 세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인 누나(임지은 분)의 신부전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인물이다. 병원비를 대기 위해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을 약값의 지불로 사용하는 듯 보인다.(유괴된 유선이 누나에게 아빠 친구가 왜 이렇게 가난해요?”라고 질문했을 때, 누나의 대답을 통하여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누나와 혈액형이 맞지 않아 신장 이식 수술이 좌절되자 무리를 해서 장기밀매 조직과 접선하고, 그들에게 사기를 당하게 된다. 류는 심지어 마약에 절어 있는 조직의 의사를 도와주는 친절한 모습까지 보인다. 의사는 손을 덜덜 떨며 마약에 중독된 모습을 보이는데(피를 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팔뚝에 고무줄을 두르고 핏줄에 주사 바늘조차 제대로 꼽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량한 류는 누나 간호를 하며 단련된 실력으로 팔뚝에 바늘을 꽂으며 마약을 투약하는 것을 도와준다. 류는 1달도 안되어서 그 의사를 죽이게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했을까? 류는 유선이 우는 사진을 찍기 위해 장난을 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사람들은 유괴범들이 그런 종류의 협박 사진을 찍을 때 아이에게 물리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정이 착한 류는 장난을 걸어 유선이 울게 만들고,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하여 동진에게 보낼 협박 사진을 촬영한다.

 

동진역시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가 형사 반장(이대연 분)에게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는 것과 유선이가 누나에게 하는 설명, 동진에게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하는 회사의 전직원 팽기사(기주봉 분)와의 실랑이를 보면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밤낮없이 전기 기술을 이용하여 성실하게 돈을 벌었고 그렇게 일만 한 결과 유선이의 엄마와 이혼하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이후의 불경기로 회사가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직원을 정리해고 해야만 했던 사람이다.(불경기라는 말은 형사 반장과의 대화에서 등장한다.) 형사 반장은 동진에게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있었냐고 물어보지만, 유선이를 유괴한 사람들은 유괴 며칠 전까지 동진을 알지도 못했던 류와 영미(배두나 분)이다. 또한 동진은 복수를 위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형사 반장의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수술비를 대준다. 형사 반장과 함께 회사 전직원 팽기사의 집에서 온 가족이 동반 자살한 것을 발견하고, 유일한 생존자인 아이를 등에 업고 뛰어가 병원에 입원시키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진은 형사 반장이 주는 정보와 류의 방음이 안되는 옛 거주지에 찾아가 결정적인 단서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류가 사연을 보낸 라디오의 DJ 이금희씨도 만난다. 거기서 미대 지망생이었던 류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유선의 죽음이 사고였을수도 있을거라는 정보를 얻는다. 류의 고향 강가에서 뇌성마비 청년이 유괴된 유선이의 사진 속의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유선의 사고사를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의 근거들을 갖고 류를 심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너 착한 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거 이해하지?”라는 대사를 남긴다.

 

영미는 착한 유괴론을 펼친다. 착한 유괴를 통하여 돈 많은 집 아이와 놀아줘서 애가 좋아할수도 있고,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 누나가 살수도 있으며, 돈 많은 집 입장에서는 류의 요구분 2600만원이 그리 부담스러운 돈도 아니니 자본의 효율이 극대화되는 자본의 이동이라는 논리이다. 영미는 말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괴해 데려온 유선과 고무줄 놀이를 해주며 잘 놀아준다. 바쁜 아버지와 이혼해서 어머니가 집에 없는 유선은 재밌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동진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영미와 류의 지시대로 금호역을 지나 한 공터에 돈을 놓고 순순히 포박되어주는 덕분에 영미의 착한 유괴론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나 싶었다.

 

유선의 사망 사건을 배당받은 경찰들도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형사 반장(이대연 분)은 유선의 죽음에 대해 현장에서 동진과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아이의 수술 소식과 함께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동진은 수술비를 뇌물로 제공하고 류와 영미에 대한 정보를 반장에게 제공받게 된다. 반장은 류가 장기매매 3인조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현장에서 영미가 뿌리고 다니던 전단지가 발견됨) 동진의 안위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어 류가 잔혹한 놈이니 이쯤에서 그만하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착한 사람들은 아이를 유괴하고, 경찰을 뇌물로 매수하고,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하고(류는 장기매매 삼인조의 신장을 씹어먹는다.), 복수라는 이름으로 사적 심판을 남발한다. 엔딩에서 동진이 죽어가며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데, 이는 아마도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는데...’라는 내용의 중얼거림이었을 것이다. 동진의 죽음과 함께 흘러 나오는 노래는 최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에 회장 아들 상무 역으로 출연한 백현진씨가 만든 노래인 어어부밴드의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가사 중 너에겐 정말 미안해 복수는 나의 것, 너에겐 정말 미안해 어쩔 수 없잖아라는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이 복수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라도 누나를 죽인 사람들, 딸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은 이들이 실존하고 있는 외부세계에서 아무 영문도 없이 들이닥쳤고 무기력한 개인은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들은 IMF를 만들지도 않았고, 누나를 그렇게 아프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누나가 먹는 약의 값을 비싸게 책정하지도 않았다. 착한 사람들은 그렇게 살인자가 되어갔다.

 

 

2. 아이러니로 가득찬 세계

 

우리가 사는 세계가 원래 그렇듯이, <복수는 나의 것>의 세계 역시 아이러니로 가득찬 세계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주로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준다.

 

류와 누나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극단적으로 방음이 되지 않는 집이다. 청각장애인인 류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가 복덕방 주인을 원망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이 집을 소개해 준 복덕방 아저씨는 내가 귀머거리라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누나는 신부전증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고, 옆집에 사는 4인조는 그 소리를 교성이라고 생각하여 단체로 자위를 한다. 하지만 누나의 보호자인 류는 아무것도 모르고 라면을 먹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 시작 10분 경에 등장한다. 박찬욱은 이 씬을 통하여 세상이 아이러니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앞으로의 비극에 청각장애인인 류의 장애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복선을 보여준다.

 

류는 자신이 당연히 누나와 혈액형이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신장 이식 수술을 신청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혈액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신장을 구하기 위하여 장기매매 업자들을 찾지만 사기를 당하고 자신의 신장과 함께 모아 둔 누나의 수술비 천만원도 날리게 된다. 여기서 아이러니하게도 뇌사자의 장기를 운 좋게 빨리 구하게 되고, 이러한 행운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선이의 유괴로 이어진다. 유선이의 유괴는 동진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돈을 갖다 주는 덕분에 성공적으로 끝나는 듯 하였다. 영미의 말대로 착한 유괴가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누나는 자신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류 때문에 괴로워했고, 자살한다. 류가 돈을 가져오는 바로 그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역시나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류와 영미는 누나 수술비 마련을 위해서 착한 유괴를 계획하고 류를 해고한 사장의 집에 차를 타고 가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사장과 사장의 가족, 그리고 동진과 유선을 보게 된다. 그리고 동진이 몰던 차가 급정지한다. 동진에게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동진의 차 앞에 드러누워 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것이다. 만약 동진에게 해고된 전직원 팽기사(기주봉 분)이 류와 영미가 류를 해고한 사장의 집 앞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자해 소동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류와 영미는 아무 생각 없이 류를 해고한 사장의 딸을 유괴했을 것이다. 류는 팽기사의 자해를 보고 사장의 딸을 유괴한다면 바로 의심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류와 영미는 동진의 딸로 유괴의 타깃을 변경한다.

 

류는 누나의 죽음 이후 누나의 유언대로 누나를 고향의 물가에 묻으러 간다. 누나를 돌로 덮으며 슬퍼하고 있는 사이 뇌성마비 청년(류승범 분)은 류의 주위를 맴돌며 누나가 착용하고 있는 장신구에 관심을 보인다. 류는 별 생각없이 뇌성마비 청년을 쫓아내고 하던 작업에 몰두한다. 하지만 뇌성마비 청년은 계속해서 장신구에 집착을 보이고, 마티즈 차 안에서 자고 있던 유선의 장신구를 나뭇가지로 가져가려다 유선이를 깨우게 된다. 유선이는 밖에 나왔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결국 물에 빠져 질식하여 죽는다. 류는 물에 빠진 유선을 보면서 깊다, 저 물은... 똑바로 서도 머리 위로 한 뼘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그가 마지막으로 그 강가에 들어가 봤을 때가 어렸을 때였기 때문이다.(‘나중에야 알았다. 왜 물이 깊다고 생각했는지. 고향을 떠난 뒤로는 거기 들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류는 이 얕은 물가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동진이 류를 유선과 똑같이 죽이기 위하여 류의 아킬레스 건을 절단하고, 류는 그 얕은 물가에서 익사한다.

 

동진의 최후 역시 아이러니하다. 동진은 매수한 경찰(이대연 분)에게서 얻은 정보로 영미의 아파트에 쳐들어 간다. 영미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배달을 시키며 경계가 느슨해져 있었는데, 결국 동진에게 결박당하고 전기 고문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카메오로 중국집 딜리버리 노동자가 등장한다.(류승완 분) 이 사람 역시 그 곳에 배달을 왔다는 이유로 별다른 이유 없이 동진에게 죽게 된다.(사실 박찬욱은 류승완을 죽이면 웃길거 같아서 죽였다고 한다.) 동진은 영미가 시킨 짜장면을 먹는데, 전기 고문에 영미는 오줌을 지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건드리면 아저씨가 죽는다며, 아저씨의 사진도 우리 조직원들이 갖고 있다고 말을 한다. 동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영미의 말을 듣고, 이내 짜증이 났는지 전기 고문을 계속 이어 나간다. 영미가 사망한 사건 현장에서 경찰들은 영미가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의 단 하나뿐인 조직원이라는 정보를 준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죽음을 앞둔 영미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관객들의 예상은 엔딩에서 무참히 빗나간다. 영미의 혁명 동료들은 정말로 동진을 찾아 오고, 동진은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다. 동진은 죽어가는 순간에 자기의 가슴에 박힌 그들의 판결문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마도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정말 아이러니한 부분은, 세 명의 주인공이 모두 복수에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조금 비튼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주인공들이 모두 목적 달성에 성공하는 일종의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동진은 딸을 납치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비록 고의에 의한 계획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지만) 류와 영미를 심판하는데 성공한다. 류는 자신에게 사기를 쳐서 누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기매매 삼인조를 모두 죽이는데 성공하고, 이를 넘어 신장을 씹어먹기까지 한다. 영미는 사실 유선이의 죽음에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하지만 동진은 영미까지 잔인하게 고문하다 죽이고, 영미는 그의 혁명 동료들을 이용하여 동진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한다.

 

박찬욱의 팬들이 이 영화를 박찬욱의 최고작으로 뽑는 이유는 영화의 2시간이라는 짧은 런닝타임을 이용하여 세계의 부조리를 영화 스토리의 구조를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찬욱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이러니로 가득 덮인 공간이라는 사고를 하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처절한 실패 이후 나온 <올드보이>에서는 주인공 오대수가(최민식 분) 친구(지대한 분)에게 흘러가듯 한 말 때문에 15년을 감금당하고 복수를 당한다. 마찬가지로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순간의 잘못된 선택, 우연들이 모여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파국을 몰고 온다.

 

 

3. 선을 넘는 순간 시작되는 복수

 

이 영화의 복수는 크게 3가지이다. 동진의 류와 영미에 대한 복수 류의 장기매매 3인조에 대한 복수 영미의 동진에 대한 복수 등 3가지의 복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동진은 유선이 유괴된 순간에는 류와 영미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의 목적은 오직 유선이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이는 형사 반장이 나중에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동진을 타박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유선의 시신이 강가에서 발견된 이후, 동진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는 이유는 오직 유괴범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는 이금희씨가 보여준 그림과 강가에서 뇌성마비 청년을 만나 그것이 사고사였음을 이해하고 난 이후에도 류와 영미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아이의 안전이 깨진 순간, 즉 류가 선을 넘는 순간 복수는 시작된다.

 

류 역시 장기매매 3인조에게 사기를 당하여 천만원과 신장을 강탈 당했을 때에는 그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누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확인한 순간, 그들에 대한 복수를 결정하고 영미에게 그들의 행방을 찾게 한다.

 

영미는 유선의 유괴에는 공동정범으로 참여하였으나, 유선의 과실치사에는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따라서 동진의 영미에 대한 처분이 과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보복의 법칙인 탈리오 법칙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복수라고 생각한다면, 유선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바가 없는 영미가 죽는 것은 과하다. 영미는 죽음보다는 덜한 복수를 당했어야 한다. 따라서 영미의 죽음은 동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영미의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4. 하드보일드와 <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이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로 대성공을 거두자, CJ엔터테인먼트가 그에게 전권을 부여하여 제작하게한 영화이다. 2002년 개봉하였다. 하지만 잔혹한 폭력성과 건조함 때문에 흥행에는 참패하였다. 시간이 지난 이후 <올드보이>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과 <친절한 금자씨>의 흥행, <스토커>를 통한 헐리우드 진출로 박찬욱의 명성이 더 올라가면서 2차 판권 시장을 통하여 손익분기점에는 도달했다고 한다. 영화 개봉 당시, 영화사는 이 영화를 한국 최초 정통 하드보일드 무비라고 홍보하였다. 이 영화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영화이다.

 

하드보일드 장르는 논리적인 수수께끼의 해결이라는 탐정 소설 장르의 인공정원을 뛰쳐나온 것이다. 하드보일드 장르는 범죄를 만들어 내는 사회 그 자체의 수수께끼를 추구한다. 이는 과거 추리 소설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의미한다. 하드보일드는 본디 계란의 완숙을 의미한다. 계란이 완숙으로 익으면 노른자가 퍽퍽해져 건조해지듯이, 하드보일드 장르는 수식을 배제하고 묘사로 일관하며 세상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카메라 기법은 부감이다. 부감은 high angle을 의미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촬영하는 것이다. 이것이 극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바로 유선이 강가에서 사망하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유선이 강에 빠진 것을 발견한 류가 다리로 달려가는 모습을 바짝 뒤쫓다가, 죽음을 확인한 이후에는 유선의 사고사로 인하여 허망해하고 있는 류와 물에 둥둥 떠 있는 유선의 시신, 그리고 뇌성마비 청년이 있는 강가를 전체적으로 위에서 비춰준다. 귀가 들리지 않는 류가 어찌할 수 없는 사고.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상 앞에 얼마나 하찮고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카메라는 서울의 달동네와 서울의 전경을 부감으로 보여준다. 이는 IMF 외환 위기 이후의 경제 상황,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장애인 가족의 비극이 단지 주인공들의 잘못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드보일드 장르가 단지 추리와 수수께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만들어 내는 사회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바로 이 영화에서 정확히 드러나는 것이다.

 

영미가 꿈꿨던 세상처럼 모든 의료 행위가 무상으로 이루어졌다면, 류는 장기매매 3인조에게 사기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유선이를 유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나가 죽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류는 불쌍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영미가 꿈꾸는 세상이 류가 사는 세상이었다면 류는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었을 수도 있고, 농아학교의 미술 교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류는 신부전증에 걸린 누나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냉혹함 앞에서 영미의 말처럼 자본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이동을 유선이의 유괴를 통해서 이루려 하였다. 그 결과는 누나와 여자친구 영미,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 모두 잃게 되는 파국이었다.

 

동진 역시 IMF라는 거대한 파도에 희생당한 측면이 강하다. 만약 외환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가 투신했던 전기업의 상황도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국 공신이라고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 팽기사를 해고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팽기사를 해고하지 않았다면 류와 영미가 팽기사의 자해를 목격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류와 영미는 계획대로 유선이 아닌 류를 해고한 사장의 딸을 유괴했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사정이 조금이라도 괜찮았다면 가정에 그렇게 소홀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유선이 엄마에게 이혼당했을 가능성이 줄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유선이의 엄마가 집에 있었다면, 류와 영미에게 유괴를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유선이는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서 아빠가 자신을 친구인 류에게 맡겼다는 말을 믿고 류와 영미를 따라왔다.

 

류와 동진 그리고 영미에게 찾아온 비극은 단지 이들이 나쁜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사회 구조와 우연의 아이러니가 불러온 일종의 나비 효과인 것이다. 브라질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텍사스에서의 돌풍을 불러오듯이, 사회 구조와 우연, 그리고 류의 실수 등은 거대한 파국으로 돌아온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비정함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동진은 유선의 시신을 부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굉장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류의 고향 강가를 탐색하며 발견한 류의 누나의 시신이 부검되는 장면을 보면서는 그저 하품을 할 뿐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현대인의 모습을 아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형사 반장(이대연 분)은 유선의 사고 현장에서 동진과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받는데 여기서 우리는 가난해서 유괴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아내에게 내뱉는다. 이는 아이를 잃은 동진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언행이다. 역시 비정한 세상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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